이 나라의 법은 사회의 최약자를 이정도 밖에 보호 못하나?
몇 주 전에 "조두순 사건"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 그런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충격 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도 그 정도의 처벌 밖에 안
내리고 그 정도 밖에 이 사회의 최약자를 보호해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나영이에게 일어난 일은 끔찍한 일이다. 내 동생이나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내 바로 총을 사서 영화
Taken처럼 직접 보복을 하러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 부모에게는 그 자신의 몸이 잘게
찢어져 나간 것보다도 더욱 큰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그 아픔 어찌 우리가 헤아릴 수 있으랴… 그리고 나영이가 평생 느낄 Trauma와 육체적인 고통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인구가
70억을 코 앞에 바라 보고 있으니 확률상 미친놈들도 아마 꽤 될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잔학성은 어차피 인류의 역사가 확연히 증명하고 있으니 굳이 이번 일의 끔찍함으로 쇼킹을 먹었다고 하진 않았다. 아프리카를
가보든 북한을 가보라. 아마 우리가 상상도 못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뉴스 스토리를 듣고 사진을 보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쩔쩔 매긴 했지만
그렇다고 큰 충격은 아니었다. 아마 몇 달 전에 진현대엽기전이라는 일본에서 1980년대에 일어난 너무나도 잔인한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어느 정도 무감각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때는 진짜 잠도 설치고 몇 일 참 힘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할
수 있는 미친놈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로써 그 놈들이 그 짓을 하지 못하게 방비를 하거나 하더라도 다시는 다른 놈들이 할 생각도
못 들게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사회가 진보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조두순 사건”을
보면 사회가 진보하기는커녕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이 점에 너무 분개하였다. 격분하였다.
아이,
장애우, 노인, 그리고 여성 등은 이 사회에서의
최약자이다. 어떤 분들은 여성이 왜 약자인가? 하는 질문을
하시겠지만 물리적인 힘으로 보았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사회적인 위치로 보았을 때도 약자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약자들을 우리 사회는 지켜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난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다. 5대양 6대륙에서 남극대륙만 빼고는 다 가보았다. 선진국도 가보았고 후진국도 가보았다. Slumdog Millionaire에
나오는 Mumbai 슬럼에서 1주일간 사람들과 어울리며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도 보았고 운이 좋게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서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상류층의 자식들과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를 겪고 나서 내가 깨달은 것은 선진국일수록
약자를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며 후진국일수록 약자가 핍박당한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미국을 보라. 30년 전에 일어난 아동성범죄 때문에 영화계의 거장 Roman
Polanski를 국제적으로 검거했다. 그 뿐인가? 성범죄가
일어나면 모든 미디어에서 무게 있게 다룬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참 황당했던 점은 언론에서 이 “조두순” 사건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런 끔찍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내놓으라 하는 언론사들이 언급도 안 했다. 내가 직접 검색도 해보았다. 포탈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이 서명하라는
내용 보고 “이런 일을 내가 왜 몰랐지” 하는 생각에 내가
자주 가는 조선일보 웹사이트 chosun.com 한겨레 웹사이트
hani.co.kr 에 가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검색 결과는 무…
이런 불공평하고 사회적으로 악이 되는
판결에 이 나라의 언론은 침묵을 지킬 뿐인가?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서니 결국에는 기사가
뜨더라.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섰다고… 젠장. 도대체 어린 여자아이가 그런 잔인한 일을 당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는데 편집장들은 그 정도 밖에 편집을 못하는
가? 독자가 원하는 기사보다는 독자에게 필요한 기사를 당신들이 선별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사의 책임 아닌가?
이제서야 조금씩 이 사회의 엄청난 후진적인
법과 사회성에 대해서 조금씩 언급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난 더욱 놀라고 분노하고 있다.
장애아동인 12세 아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5-6명의 악질적인 놈들이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05/2009100500478.html?srchCol=news&srchUrl=news4
그런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0/2009101000039.html
난
웬만한 일에는 별로 무관심한 편이다. 어차피 이 세상이 어느 정도 순리에 어느 정도 잘 돌아갈 거라고
믿고 굳이 사회를 바꾸겠다 하는 그런 용기도 없기에 보통 사회의 부조리에는 신경을 잘 안 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뭐랄까 내 맘에 불을 지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한국민들이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이다. 과연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해 주지도 못하면서 나라가 부강해지면 무슨 소용인가? 자신들의 자식들은 안전할 것 같은가? 어느 정도 재력이 있으면 당연히
이런 일에서 어느 정도 안전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안주하면 당신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 안 하는가?
지금
그래서 Youtube에 동영상을 정리해서 올리려고 한다. 내가
영어 해설과 번역을 맡을 수 있으니 동영상 제작할 사람과 자료를 제대로 정리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 네이버
카페 같은 곳에도 올려 보고 했는데 나서는 사람들이 없어서 실망했다. 좀 누가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
정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Oprah같은 사람에게도 편지를 보낼 생각이다. 이번 기회에 확 모든 것이 제대로 바뀌어서 법도 개정되고 아이들, 장애우, 노인들, 여성 같은 약자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약자가 다른 강자에게 핍박 당하는 것을 방관 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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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노력x=목표〗)=행복
가끔 인생이 힘들고 실패감에 빠졌을 때 “난 왜 이렇게 태어났지” “왜 내 환경을 이런거야” 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곧 “재벌 집에 태어났으면…” “브래드 피트처럼 생겼으면…” “아이큐가 200이었으면…” 하며 내 나이 또래들의 남자가 가장 동경하는 “엄친아” 처럼 되기를 빌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조건 대로 환경을 조율하고 내 자신을 조율하여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 태어났을 때 난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 것인가?
지금은 거의 안 하지만 예전에 게임을 엄청 하던 적이 있었다. 컴퓨터, 플스2, 닌텐도 등 게임기를 가리지 않고 롤플레잉, 전략, 액션, 슈팅 등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가 일본 Square-Enix사의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였다.
나올 때마다 그 현시점에서 최고의 그래픽을 이용한 화려한 효과와, 수려한 외모의 주인공들, 마음을 저미게 하는 OST, 그리고 최소한 40시간을 투자하게 만드는 방대하며 깊은 스토리로 나를 항상 감동 시킨 작품이다.
근데 이 게임을 할 때 가끔가다가 막히면 짜증이 나서 치트를 하던 해킹을 하여 내 캐릭에게 최고의 아템들을 선사하고 레벨을 최고로 높이며 돈을 무제한으로 줘 본 적이 있다. 그러면 게임이 엄청 쉬워진다. 5분 걸리던 전투가 15초 만에 끝나고, 전술은 생각도 할 필요 없고 그저 한 대씩 때리기만 해도 적이 다 죽고, 아템 걱정은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불도저처럼 스토리를 밀고 가면 됐다. 그 때 느끼는 그 우월감이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하지만 그 상쾌함도 잠시… 곧 무료함에 빠져든다. 게임 자체가 재미없어 진다. 적이 나타났을 때의 죽음의 공포감이 사라지며 이겼을 때의 쓰릴이 없어진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도 그냥 덤덤할 뿐이며 결국은 새로운 아이템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곧 게임을 그만 하게 된다.
우리 인생도 이런 게임 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프로그램”을 하여 우리 자신을 엄친아로 만들어 버리면 우리는 아주 순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잘 생기고, 돈 많고,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노래 잘하고, 이쁜 애인이 있고, 좋은 부모님이 계시고,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질 때 과연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지? 우리와 이 세계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내가 주는 것을 이 세계가 받고 또 세계가 주는 것을 내가 받으며 공존하는 관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면 더 이상 이 세상이 우리한테 줄 것이 사라지며 결국엔 그 상호관계가 깨진다. 내가 장담하는데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자는 지루함과 인생의 공허함에 빠져 진정한 행복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기 목숨을 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힘든 상황에 빠지고 어떠한 콤플렉스가 자기 자신을 강타할 지라도 절망하지 말고 그런 점이 자신에게 목표를 줌으로 자신의 인생을 즐겁고 보람차게 만든다는 것을 염두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자. 그러면 그 과정이 행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어떠한 도달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수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러한 공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떠한 목표를 위하여 무한적으로 노력하면 결국 그 목표에 도착할 것이라고 이 극한함수는 답을 준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삶에 한계가 있으니 우리는 영원히 노력하여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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